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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앗차’ 하지 말자

우리가 잠깐 머물던 한해가   서서히 저물어간다.       지난 시간은 참으로 아름다운 날들이었네   그것은     살아있었다는 그 한 가지 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아름답고   한번 살아 볼 만한 가치가 있었노라고...       그 한해에 속에는     미움도, 시기도, 질투도, 분노도 있었고   즐거움도, 행복도,보람도, 사랑도 있었네   그런 모습 속에서도   우린 서로 인연의 고리를 가지고 있지.       한 개의 고리가 끊어지면   다른 고리도 저절로 끊어지는 법,   고귀하고 귀중한 인연의 고리를   다시 한번 동여매어 보자.       2023년이 가고 2024년이 오면   새해에는 ‘앗차’ 하지 말자       보통 때에는 모르고 있는     공기나 물처럼   그것이 얼마나 귀중하고   고마운 것을 모르는 것처럼   우린 타인의 인격과 생각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한 사람이 ‘앗차’ 실수를 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사이에   다른 한 사람이 불행해진다.       창밖을 바라보자   현란하게 색색으로 물들었던   나뭇잎들이 바람에 날리다   이젠 차가운 눈 속에 잠들고     내일을 꿈꾼다.       우리 새해에는   많은 생각을 하자.   지난해의 모든 슬픔과 고통의 멍에를     그냥 내려놓고   새로운 바다의 삶 속으로   훌훌 떠나보자.       새로운 해에는 사랑 안에서   ‘앗차’하는 실수를 하지 말자   그리고 못 본 척도 하지 말자! 석 송 / 시인시 질투도 분노 우리 새해 지난 시간

2023-12-28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내 인생의 순위

나이 들면 좋은 것도 있다. 지루한 설명과 수식어가 필요 없다. 있는 그대로 보이면 된다. 보여주기 식으로 살면 피곤해진다. 있는 그대로 살면 편하다. 타인의 방에 기웃거릴 일도 없고 남의 눈과 이목을 무시해도 된다.   인생의 높낮이는 타인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보는 나의 눈높이가 내 인생의 지표다. 올려다 볼 곳도 없고 내려다 볼 일도 없어진다. 눈치 보며 주눅들어 살 일 없고 잘난 체 떠들어도 박수 쳐줄 아군도 필요 없다.   단순하고 명백하게 살기로 한다. 페이지 수가 넘치는 책들처럼 중복된 사설 접고 소중한 것만 챙기기로 한다. 하릴없이 쓸데없는 일에 휘둘리지 말고 우왕좌왕 하지 않고 정신줄 꼭 잡고 가슴이 뒤척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 다짐을 한다.   아래로 내려다보며 높은 곳에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착각했다. 많은 것들로 돌무덤 쌓고 보물이라 부둥켜안고 살았다. 가을이 오면 추수할 일만 남았다. 타작마당에서 건실한 씨앗만 건지면 된다.   모두를 사랑하면 한 사람에게 순정을 바칠 수 없다. 남은 시간 서로 동반자로 등불을 밝혀줄 정예 인원만 필요하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던 수 많는 인연들과 작별하면 된다. 이승에서 치를 마지막 전쟁도 아닌데 대군을 이끌고 설치면 구차스럽고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적당한 때라 생각하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는 것이 도리다. 이기적인 유전자는 생존의 혜택을 받는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 이 없네./ 듣는 사람 없어도 날이 밝도록/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개굴개굴 개구리 목청도 좋다- ‘개구리’ 이동찬 작사, 홍난파 작곡   아무도 듣지 않아도 개구리는 목청 높여 노래를 한다. 자식들이 내가 쓴 컬럼 읽지 못해도 개굴개굴 글쓰기를 계속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아픈 흔적을 지우는 일이다. 헝클어진 생각을 바로 잡아주고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준다.   남편도 자식도 형제도 친구도 모두 남이다. 믿을 것은 ‘나’ 뿐이다. 실은 나 자신도 온전히 믿을 것은 못되지만. 애인은 더 더욱 믿을 게 못 된다. 알사탕처럼 입안에서 달콤해도 풍선껌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너무 세게 불면 허무하게 터진다. 애인은 못 믿어도 사랑은 온몸으로 하자. 사랑의 말들이 허깨비 장난에 불과해도 사랑마저 떠나 간 강변의 나무들은 너무 외롭다. 사랑의 말들이 동그라미로 맴도는 바람의 언덕에서 휘날렸지만 사랑이 있었기에 꺾여지지 않았다.   코넬대 칼 팔레머 교수는 65세 이상 미국인 1500명을 대상으로 나이 들어 가장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는데 ‘걱정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시간을 후회하며 매일 걱정보따리 껴안고 살지 않기로 한다. 나이는 괜히 먹는 게 아니다. 죽게 되면 죽으면 된다.   이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내가 없으면 광활한 우주도 빛을 잃고 캄캄해진다. 별똥별은 우주에서 떠돌던 먼지나 암석이다. 공전 속도의 영향으로 지구로 끌려 들어와 대기권에서 마찰을 일으키며 불타며 밤하늘에서 떨어진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지구로 끌려와 작은 먼지로 이리저리 부딪히며 살았다 해도 별똥별 떨어지는 그 곳에 작은 지표 하나 세우면 이름 없는 들꽃으로 피어나리.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인생 순위 개구리 노래 개구리 목청도 지난 시간

2022-09-13

[이 아침에] ‘마흔아홉’을 되돌아본다

마흔아홉을 지난 지도 십여 년이 넘었다. 마흔아홉까지 오는 길은 복잡하고 때로 예상치 못한 길이었다. 공부를 계속하고 그것을 업으로 삼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두 나라를 떠돌며 살았다. 이제 한국에 산 시간보다 더 오래 한국을 떠나 있게 되었다.     해마다 또박또박 나이를 먹다가도 앞자리가 바뀌는 해가 오면 삶을 더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된다. 지난 십년을 정리하고 다가올 시간은 더 잘 살아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스무 살 즈음에는 어른이 다 된 줄 알았다. 어른들은 그 시절이 좋은 때라고 했지만 그때는 그것을 몰랐다. 가진 것이 없어 불안한 시절이었다. 이십 대가 끝날 즈음 결혼을 하고 새내기 부모가 되었다. 아이 키우는 일도, 모국이 아닌 곳에서 먹고 사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서른에서 마흔까지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자식 키우는 일에 전념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자리를 잡아가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의기소침하기도 했다. 배운 것과는 다른 일을 하며 생활인이 되어갔다.     마흔아홉에 비로소 꿈을 내려놓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떠나보내지 못했던 가르치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대단한 후회나 회한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마흔아홉까지는 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십이 다가올수록 세상에서 한 발자국 밀려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사십 대의 마지막에 이제까지와 다른 무엇이 되고 싶었다. 늘 하던 것을 하지 않거나 안 해본 것을 조금씩 해 보았다.   빨간 치마를 하나 장만했다. 빨간 가방도 샀다. 검은색 단화를 벗고 빨간 구두를 신었다. 거기에 어울리는 붉은 립스틱도 짙게 발랐다. 방에서 마루를 지나 부엌까지 모델처럼 걸어 보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었다. 여러 해 동안 옷장을 차지했던 빨간 치마는 결국 한 번도 외출복으로 입지 못했다.   오십 대가 되니 생각 속의 나이와 실제 나이가 크게 달라졌다. 마음은 사십 대에 멈춰 있는데 나이가 훨씬 앞서가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사람이 보면 그저 나이밖에 없는 중년일 터이고 노인이 본다면 아직도 창창한 꽃 같은 시절이었다.     이제 육십을 넘었다. 지루한 노년이 시작된 것이다. 얼굴은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고 목에는 실개천 같은 주름이 흐른다. 허리 디스크도 얻었고 두통도 달고 산다. 가지고 있는 힘을 적절히 분배하여 쓰고 있다. 마음 가는 일에는 에너지를 쏟고 불편한 것은 피한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무리하거나 욕심내지 않는다. 제한적이지만 순도 높은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아 그것도 나쁘지 않다.     하고 많은 나이 가운데 하필 마흔아홉이 기억에 남은 나이가 되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 나이를 앞둔 아우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나이든 선배의 생각 하나를 훔쳐가 주었으면 좋겠다. 박연실 / 수필가이 아침에 나이 가운데 지난 시간 생각 하나

2022-09-05

[이 아침에] ‘마흔아홉’을 되돌아본다

마흔아홉을 지난 지도 십여 년이 넘었다. 마흔아홉까지 오는 길은 복잡하고 때로 예상치 못한 길이었다. 공부를 계속하고 그것을 업으로 삼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두 나라를 떠돌며 살았다. 이제 한국에 산 시간보다 더 오래 한국을 떠나 있게 되었다.     해마다 또박또박 나이를 먹다가도 앞자리가 바뀌는 해가 오면 삶을 더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된다. 지난 십년을 정리하고 다가올 시간은 더 잘 살아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스무 살 즈음에는 어른이 다 된 줄 알았다. 어른들은 그 시절이 좋은 때라고 했지만 그때는 그것을 몰랐다. 가진 것이 없어 불안한 시절이었다. 이십 대가 끝날 즈음 결혼을 하고 새내기 부모가 되었다. 아이 키우는 일도, 모국이 아닌 곳에서 먹고 사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서른에서 마흔까지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자식 키우는 일에 전념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자리를 잡아가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의기소침하기도 했다. 배운 것과는 다른 일을 하며 생활인이 되어갔다.     마흔아홉에 비로소 꿈을 내려놓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떠나보내지 못했던 가르치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대단한 후회나 회한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마흔아홉까지는 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십이 다가올수록 세상에서 한 발자국 밀려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사십 대의 마지막에 이제까지와 다른 무엇이 되고 싶었다. 늘 하던 것을 하지 않거나 안 해본 것을 조금씩 해 보았다.   빨간 치마를 하나 장만했다. 빨간 가방도 샀다. 검은색 단화를 벗고 빨간 구두를 신었다. 거기에 어울리는 붉은 립스틱도 짙게 발랐다. 방에서 마루를 지나 부엌까지 모델처럼 걸어 보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었다. 여러 해 동안 옷장을 차지했던 빨간 치마는 결국 한 번도 외출복으로 입지 못했다.   오십 대가 되니 생각 속의 나이와 실제 나이가 크게 달라졌다. 마음은 사십 대에 멈춰 있는데 나이가 훨씬 앞서가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사람이 보면 그저 나이밖에 없는 중년일 터이고 노인이 본다면 아직도 창창한 꽃 같은 시절이었다.     이제 육십을 넘었다. 지루한 노년이 시작된 것이다. 얼굴은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고 목에는 실개천 같은 주름이 흐른다. 허리 디스크도 얻었고 두통도 달고 산다. 가지고 있는 힘을 적절히 분배하여 쓰고 있다. 마음 가는 일에는 에너지를 쏟고 불편한 것은 피한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무리하거나 욕심내지 않는다. 제한적이지만 순도 높은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아 그것도 나쁘지 않다.      하고 많은 나이 가운데 하필 마흔아홉이 기억에 남은 나이가 되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 나이를 앞둔 아우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나이든 선배의 생각 하나를 훔쳐가 주었으면 좋겠다. 박연실 / 수필가이 아침에 나이 가운데 지난 시간 생각 하나

2022-08-29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의 사랑, 나의 몽당

나의 사랑, 나의 몽당       깎아지고, 부러지고, 닳아지고 몽땅 사라지고 남은 몽당     모양이 왜 그래 그래 내 모양이 좀 그래 인생이 그래     누군가 흔들어야 깨어날 짧아진 몽당     손에 잡히지 않는   나무와 나무 사이로 밤은 내리고 아침이 핀다 겨울과 봄 사이 수천의 생명이 꿈틀거리고 사라진 길이만큼 패이고 깎인 구불한 흔적을 벗는다     간이역에서 기차를 탄다 차창 따라오는 풍경에   시선을 빼앗긴 사라진 시간 낯선 간이역에 기차는 서고 몇은 내리고 몇은 탄다 여행 같은 삶, 삶 같은 여행 나타남과 사라짐 사이로 벌써 끝자락, 몽당     빛 바랜 활동사진처럼 인생이 왜 그래 인생이 그래, 그런 거야     엄지와 인지를 모아 세운다 깃털같이 가벼워져 이젠 날아갈 날도 되었지   버려진 것은 하나도 없지 세상 어느 구석 삶의 어느 순간 스며 석양을 몰고 간 밤 하늘처럼 푸르고 푸른 색 가득 반짝이다 사라진 삶의 메타포처럼 몽땅 사라지고 남은 몽당 온 몸을 하늘로 불 사른   나의 사랑, 나의 몽당이여         서랍을 정리하다 몽당연필 한 자루를 발견했다. 까만색 4B Tombow 미술 연필이다. 거의 집을 수 없는 작은 연필 끝에 볼펜 자루를 끼워 그 기능을 겨우 유지할 수 있는 그야말로 작은 몽당연필이다. 한 뼘이나 될 길이가 깎이고 닳아져 엄지와 검지로 간신히 집을 만큼이나 작아졌다. 수 없이 많은 밑그림을 그렸고 숨겨진 모양과 명암을 그리며 소중히 사용했던 손 때 묻은 연필이다. 그림의 시작은 밑그림부터 시작되기에 이 연필은 그림의 시작이었고, 아이디어의 사유였고, 그림의 구성이었다. 깎이고, 부러지고, 닳아버린 모든 길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그림의 뼈대로, 요소로 남아 있음을 믿고 싶다. 지금은 작고 쓸 모 없는 몽당연필 이지만 닳아 없어진 길이만큼 감당한 그의 존재는 귀하지 아니할 수 없다.   연로하신 어르신들을 만나러 가끔 양로원을 방문한다. 지금은 기력도 몸도 쇠하셔서 휠체어에 의지하시는 몸이 되었지만 그분들을 뵐 때마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절로 나옴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자식들을 키우고 살림을 꾸리며 밤낮으로 수고하셨을 노고에 머리가 숙여진다. 주름진 얼굴이며 굽은 허리에 연약해진 모습이지만 지난 시간 남겨 놓은 아름다운 씨앗들은 세상의 곳곳에서 다시 꽃 피울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우리는 기차를 기다리고, 어딘가에서 다가오는 기차의 울음에 귀를 기울인다. 기적이 울리며 서서히 간이역을 향해 다가오는 기차를 향해 우리는 짐을 꾸린다. 우리는 서로의 거리에서 다가 가기도 하지만 멀어지기도 한다. 다정해지기도 하지만 미워하기도 한다. 철로의 뻗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결코 한 길로 만날 수는 없다. 차창에 부딪혀 오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고 겨울과 봄을 맞이 하기도 한다. 어느 낯선 간이역에 기차가 선다. 몇몇은 굽은 허리로 내리고 몇몇은 짐을 들고 기차에 오른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온다. 여행같이 흐르는 삶은 노을을 밤하늘로 사라지게 한 삶의 메타포 아닌가. 몽땅 닳아서 사라진 시간이 지난 후 마주하는 추억이며, 그림이며, 사랑이 된 몽당이 아니겠는가.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사랑 몽당 끝자락 몽당 나무 사이 지난 시간

202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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